현재 위치:메인 화면 >백과 >내가 나를 알아보고, 마음에 새살 돋은 4주···‘출가할 결심’ 굳혔다

내가 나를 알아보고, 마음에 새살 돋은 4주···‘출가할 결심’ 굳혔다

2024-03-29 01:26:25 [지식] 출처:서울뉴스엔비

내가 나를 알아보고, 마음에 새살 돋은 4주···‘출가할 결심’ 굳혔다

“나를 알아보고 귀하게 여겨주는구나…울컥 눈물”
경기 수원 봉녕사 1기 여성출가학교 동행 취재
4주간 새벽 4시 기상, 참회기도, 일보일배 등
경기도 수원 봉녕사 봉녕사에서 지난 14일 제1기 여성출가학교 행자들이 합장한 채 한 줄로 서서 걸어가고 있다. 정효진 기자


지난 14일 경기도 수원 봉녕사에 따스한 햇볕이 내려앉았다. 예불 시간 기도 소리가 경내에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승복을 입은 스님들과 평상복을 입은 신도들 사이로 노란색 상의에 회색 바지를 입은 11명의 행자들이 손을 모아 합장하고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점심 공양 후 주어진 쉬는 시간, 행자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 이들은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서로가 서로의 부처가 되는 ‘서로 부처되기’, 두 명이 짝을 이뤄 상대방에게 108배를 나눠 54배씩 절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누군가 나를 탓하고 추궁하면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인가, 자신을 비난하면서 위축된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정말 많이 울었어요. 앞에 계신 분이 저에게 와서 절을 하는데, 얼마만에 아녕이가 아녕이를 이렇게 알아보는지…. 늘 채찍질하고 혼내고 바보같다고 하더니 오늘은 모처럼 나를 알아보고 귀하게 여겨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 눈물이 났어요.”

경기도 수원 봉녕사에서 지난 14일 제1기 여성출가학교에 참가한 아녕 행자가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아녕 행자는 출가학교를 통해 출가의 결심을 굳혔다며 웃었다. 정효진 기자


짧은 머리의 아녕 행자(58)가 말했다. 11명의 행자들은 지난달 21일부터 4주간 열린 봉녕사의 제1기 여성출가학교에 참가했다. 아녕 행자를 비롯한 3명의 행자들은 ‘무명초’라 불리는 머리카락을 깎는 삭발식을 했다. 까슬까슬 자라난 짧은 머리카락에서 4주란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아녕 행자의 마음도 변화했다. 17일 회향을 앞두고 출가의 마음을 굳혔다.

“늘 마음 한구석에 출가에 대한 생각이 있었지만 나이가 많아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은퇴 출가 제도가 있다고 해서 출가할 결심을 했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해태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길이 누구와 손잡고 가는 길도 아니고 자기 공부이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으리란 생각을 합니다.”

은퇴 후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휴가’를 선물하듯 출가학교를 찾은 보리심 행자(59)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 전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출가학교를 찾은 마니주 행자(17)까지 11명의 행자들은 나이도, 이곳을 찾은 목적도 다양했다. 4주 동안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을 한 뒤 저녁 9시까지 이어지는 꽉찬 일정을 수행했다. 참회기도를 하며 3000배를 하는 자비도량참법, 봉녕사 경내를 한 걸음에 한 번씩 절하며 도는 일보일배까지 쉽지 않은 일정도 함께 소화했다.

경기도 수원 봉녕사의 제1기 여성출가학교에 참여한 마니주 행자(위쪽)와 향운지 행자가 지난 14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막내 마니주 행자는 새벽부터 빈틈없이 이어지는 일과도, 단체생활도 쉽지 않았지만 ‘언니’들의 도움을 받으며 해나갈 수 있었다. “불자인 어머니의 추천으로 졸업 후 대학 입학까지 시간이 남아 오게됐어요. 지금껏 막연하게 생각했던 불교와 너무 달라 이제부터 스스로 불교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요.” 마니주 행자는 어릴 때부터 꿈꿔오던 제과제빵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관련 대학 학과에 합격한 상태라고 전했다.

향운지 행자(22)는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가기에 앞서 삶을 정비하고 싶은 마음에 이곳을 찾았다. “스스로 있는 줄도 몰랐던 상처가 명상을 하고 절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치유가 됐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억지로 힘을 내서 웃었다면 지금은 마음이 치유되고 새살이 돋으니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사회에 나가서 내가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야하는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생의 고통 속에 빠졌을 때 종교는 위로와 구원이 된다. 금강경 행자(55)에게 불교가 그랬다. 본인의 암 투병에 이어 오빠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0년 동안 정성들여 운영한 가게도 문을 닫았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억울한 마음이 크고 고통스러웠어요. 그때 접한 불법이 힘든 일들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됐어요. 좀더 깊이 공부하고 오롯이 저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어 출가학교를 찾았습니다.”

경기도 수원 봉녕사의 제1기 여성출가학교에 참여한 금강경 행자(왼쪽)과 아녕 행자가 지난 14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효진 기자


4주 동안 마음을 나누며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알게 됐다. 향운지 행자는 “4주 동안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삶과 아픔을 많이 공유했다. ‘서로 부처되기’ 시간에 한 분 한 분의 삶이 떠오르면서 사람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게 됐고, 상대방이 부처님이라 느끼면서 어느 때보다 더 정성스럽게 절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 시대 창건된 봉녕사는 1974년 묘엄스님이 주지로 취임한 후 봉녕승가학원을 설립한 후 비구니 승가교육의 요람으로 자리잡았다. 그동안 월정사 등에서 출가학교가 운영됐지만, 여성출가학교가 시행된 건 봉녕사가 처음이다. 대한불교조계종 1만여 명의 스님 중 비구니 스님은 약 4000명에 달하며, 봉녕사를 비롯해 서울 진관사, 청도 운문사 등이 대표적 비구니 사찰이다. 여성출가학교 입승 능윤스님은 “출가학교를 통해 불법을 접하고 삶의 방향성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길 바라는 마음, 출가학교 경험이 출가의 여정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됐다”고 말했다. 출가자 수는 감소 추세로, 2019년 143명의 출가자가 2022년엔 61명까지 줄었다가 지난해엔 84명으로 다소 늘었다.

경기도 수원 봉녕사의 제1기 여성출가학교 참여자들이 지난달 31일 스님과 함께 일보일배로 경내를 돌고 있다. 봉녕사 제공


제1기 여성출가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경기 수원시 봉녕사에서 14일 행자들이 붓다볼 명상 수업을 듣고 있다. 정효진 기자


여성출가학교 교육과정은 봉녕사에서 승려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해온 차명상, 싱잉볼명상 등을 포함하면서 다채로워졌다. 14일 오후엔 선정스님의 안내로 붓다볼명상이 이어졌다. 싱잉볼을 울려 소리와 진동을 느끼며 명상하는 시간이었다. 네 번째를 맞는 붓다볼명상 시간에 행자들은 능숙하게 명상을 이어갔다. “처음엔 마음이 가득 차 있어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마음이 가볍고 소리도 맑게 들려 마음이 편안하다” “몸에 온기와 진동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며 소감을 말했다.

능윤스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저녁 9시까지 일과를 이어가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주 동안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행자들이 마음의 힘을 키우고 중심 에너지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저희로서도 많이 배우고 공부하는 시간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11명의 행자들은 회향식을 갖고 4주의 여정을 마쳤다. ‘달라진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숙제로 남았다. 아녕 행자는 3월에 다시 봉녕사로 돌아와 정식 출가한다. 봉녕사는 매년 여름·겨울에 여성출가학교를 열 예정이다.

제1기 여성 출가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경기 수원시 봉녕사에서 지난 14일 행자들이 능윤스님과 대화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책임편집:초점)

    추천 기사